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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제로인 영화!! 허구의 인과관계에 실제 역사의 권위를 빌린 영화

《암살자(들)》의 역사적 프레이밍에 대한 비판

영화는 허구를 사용할 자유가 있다. 실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아 새로운 인물을 만들 수도 있고, 기록에 남지 않은 부분을 상상력으로 채울 수도 있다. 문제는 허구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역사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인과관계를 만들어 놓은 뒤, 실제 역사적 사건과 기록의 권위를 이용해 그 허구에 사실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나는 바로 이 점에서 영화 《암살자(들)》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1. 영화가 제시하는 것은 단순한 ‘의문’에 그치지 않는다

허진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진실을 자신이 단정할 수 없으며, 영화는 결론보다는 가설과 상상의 형태로 사건을 다뤘다고 말했다. 또 실제 역사적 사실과 비교해 판단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그 설명만 들으면 영화가 여러 가능성을 동등하게 제시하고 관객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거리를 둔 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영화의 서사 구조를 보면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영화는 실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출발점으로 삼은 뒤,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공범과 국가기관의 개입·은폐 가능성을 주요 미스터리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파헤치는 역할을 가상의 기자들에게 맡긴다. 특히 감독 자신이 공범으로 추정되는 ‘미궁 속 인물’ 등이 허구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자 캐릭터들도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었고 나중에 추가한 인물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 부분은 실제 역사적 기록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영화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서사다.

2. 가장 큰 문제는 그 허구 뒤에 실제 역사를 붙였다는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는 1974년의 실제 역사적 사건인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이 등장한다. 그러나 자유언론실천선언의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 문세광 사건의 배후, 국가기관의 저격사건 은폐 의혹과 관련된 내용은 없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발표한 선언은 언론에 대한 외부 간섭 배제, 기관원의 언론사 출입 거부, 언론인의 불법연행 거부 등이 핵심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보존하고 있는 선언문에서도 이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직접적인 배경으로 확인되는 것은 언론통제와 언론인·언론사 간부의 연행 등이었다. 특히 선언 전날인 10월 23일 동아일보 송건호 편집국장 등 3명이 연행되자 기자들이 철야농성에 들어갔고, 다음 날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다. 따라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숨겨진 진실을 기자들이 파헤쳤다 → 국가기관이 이를 막기 위해 기자들을 탄압했다 → 그 결과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이어졌다라는 인과관계는 확인된 역사가 아니다. 그런데 영화는 관객이 바로 그런 연결을 연상하기 쉬운 구조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3. 더구나 감독은 두 사건이 직접 관련 없다는 질문을 받고도 ‘클라이맥스’를 위해 넣었다고 밝혔다

이 부분이 특히 중요하다.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기자는 허진호 감독에게 직접 “영화 후반부 ‘자유언론실천선언’도 이 사건과 관련 없는데 들어갔다”고 질문했다. 이에 허 감독은 두 사건이 실제로 연결돼 있다고 반박한 것이 아니라, “결론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영화적 클라이맥스 차원에서 넣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당시 정부가 원하지 않는 기사를 내는 기자들에 대한 억압이라는 점에서 맥락이 닿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바로 이것이 이 영화에 대한 가장 중요한 비판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는 두 사건을 감독이 영화적인 클라이맥스를 만들기 위해 하나의 서사 속에서 연결했다는 것이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가상의 경찰이나 기자를 한 명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왜냐하면 이 연결은 영화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추적하는 언론 대 진실을 은폐하는 국가권력’이라는 도덕적 구도를 완성하기 때문이다.

4. 실제 역사는 허구에 ‘사실 인증 도장’처럼 작동한다

영화의 전반부와 중반부에는 상당한 양의 영화적 상상력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에 실제 역사인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배치하고, 실제 선언문과 시대의 기록성을 연상시키는 장면을 강하게 보여준다면 매우 독특한 효과가 발생한다. 앞에서 본 허구적 이야기가 뒤에 등장한 실제 역사 때문에 마치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건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쉽게 표현하면, 허구 → 허구 → 가설 → 실제 역사의 순서로 이야기를 배열함으로써 마지막의 ‘실제 역사’가 앞부분의 가설에까지 사실성을 전이시키는 효과가 생긴다. 영화가 직접 자막으로 “국가기관의 자작극이었다.”라고 선언하지 않더라도 관객의 기억에는 “기자들이 정부가 감추려던 저격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려다가 탄압받았고 결국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이어졌구나.”라는 하나의 이야기가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 역사로 입증된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이 점에서 《암살자(들)》의 문제는 단순한 ‘각색’의 범위를 넘어선다.

5.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는 말이 면책조항이 될 수는 없다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결정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라는 매체에서 관객의 판단은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감독은 무엇을 보여줄지 선택한다. 어떤 인물을 정의로운 인물로 보여줄지도 선택한다. 어떤 의혹에 많은 시간을 배정할지도 선택한다. 무엇을 음악과 편집으로 강조할지도 선택한다. 그리고 무엇을 마지막 장면에 남길지도 선택한다. 따라서 2시간 동안 한 방향으로 서사를 구축한 다음 마지막에 “판단은 관객에게 맡긴다”고 말한다고 해서 앞서 이루어진 모든 연출의 방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령 역사적으로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사건 A와 사건 B 사이에 감독이 가상의 인물과 가상의 사건을 삽입해 강력한 인과관계를 만들어 놓고, 마지막에 실제 역사자료 B를 보여준다면 관객은 A와 B가 실제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이것을 단순히 “관객이 알아서 판단하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실제 현대사를 소재로 삼았다면 관객에게 허구와 사실을 구별할 충분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 역시 창작자의 책임이라고 볼 수 있다.

6.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일수록 오해 가능성이 커진다

역사영화의 영향력은 역사 전문가보다 오히려 역사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관객에게서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1974년의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자세히 모르는 젊은 관객이 이 영화를 보았다고 생각해보자. 문세광 사건에 관한 실제 기록과 후대에 제기된 의혹을 구별하기 어렵고, 영화가 창작한 동성일보 기자들이 실제 동아일보 기자를 모델로 했는지도 알기 어렵다. 그리고 마지막에 실제 존재했던 자유언론실천선언까지 등장한다. 그 관객에게 영화 속 사건 전체가 “아, 1974년에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구나.”라는 하나의 역사적 기억으로 남을 가능성을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가 허구와 사실을 결합할 때에는 일반적인 극영화보다 더 세심한 역사적 책임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7. 자유언론실천선언에 관한 감독의 인터뷰에도 역사적 시간순서 문제가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이 있다. 허 감독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설명하면서 동아일보의 백지광고 사태에서 비롯된 선언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나 역사적 날짜를 확인하면 순서가 반대다. 자유언론실천선언은 1974년 10월 24일 발표되었다. 동아일보의 광고탄압이 본격화된 것은 그해 12월이고, 실제 백지광고가 등장한 날짜는 1974년 12월 26일이다. 즉 백지광고는 자유언론실천선언보다 약 두 달 뒤의 일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기록에서도 백지광고 사태가 자유언론실천선언 이후 발생했다고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인터뷰에 보도된 감독의 설명은 역사적 시간순서와 맞지 않는다. 물론 이것이 감독의 단순한 말실수인지 인터뷰 과정에서 표현이 잘못 전달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매우 민감하게 다루는 영화의 감독 인터뷰에서 이런 착오가 등장했다는 것은 가볍게 넘길 문제만은 아니다.

8. 그래서 이 영화를 ‘중립적인 질문’이라고만 평가하기 어렵다

《암살자(들)》은 분명 직접적으로 하나의 역사적 결론을 자막으로 선언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론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과 아무런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영화는 어떤 의혹을 선택했고, 그 의혹을 누가 추적하도록 만들었으며, 그 반대편에 어떤 권력을 배치할 것인지 선택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실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그 서사의 클라이맥스로 선택했다. 따라서 이 영화는 단순히 “1974년 사건에는 이런 의문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판단하십시오.”라고 말하는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확인되지 않은 국가기관 개입·은폐 가설을 ‘진실을 찾는 언론인들의 투쟁’이라는 도덕적 서사 속에 배치하고, 그 마지막에 실제 역사인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연결함으로써 특정한 역사해석에 상당한 정서적·서사적 무게를 실은 영화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9. 허구의 자유와 역사적 책임은 함께 존재해야 한다

물론 창작자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 영화가 역사책일 필요도 없다. 그러나 실제 현대사의 비극을 소재로 삼으면서 실존사건과 실제 역사자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순간, 창작의 자유와 함께 역사적 책임의 문제도 따라온다. 특히 역사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가설을 강력하게 극화했다면 그것이 가설이라는 사실을 작품 안에서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암살자(들)》은 오히려 영화가 만들어낸 허구적 인과관계의 끝에 실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배치한다. 나는 이것을 ‘허구의 인과관계에 실제 역사의 권위를 빌려준 연출’이라고 본다. 감독이 그것을 “영화적 클라이맥스”라고 설명하는 것은 왜 그런 연출을 선택했는지를 설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설명이 그 선택으로 인해 생겨날 역사적 오해 가능성까지 면제해주는 것은 아니다.

결론

《암살자(들)》을 비판해야 할 핵심은 “허구를 사용했다”는 데 있지 않다. 입증되지 않은 국가기관 개입과 은폐 가능성을 진실을 추적하는 기자들의 이야기로 구성하고, 역사적으로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는 실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그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에 접붙였다는 것이 핵심이다. 더구나 감독은 인터뷰에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저격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질문을 받은 뒤에도 영화적 클라이맥스를 위해 넣었다고 설명했다.

바로 그 때문에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는 감독의 설명만으로 영화의 책임을 모두 관객에게 돌릴 수는 없다. 관객이 무엇을 판단하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자료와 서사와 편집을 먼저 선택한 사람은 감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에 대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비판이 가능하다고 본다.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가설의 경계를 흐렸고, 실제 역사의 권위를 이용해 창작된 인과관계에 사실성을 부여했으며, 그 결과 역사적 배경지식이 부족한 관객에게 특정한 역사해석을 실제 역사처럼 받아들이게 할 위험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이러한 점에서 《암살자(들)》의 연출은 단순히 “열린 질문”이라고 보기보다는 강하게 방향 지어진 역사적 프레이밍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특정한 해석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정도에 이른다면 ‘선동적 효과를 가진 연출’이라는 비판 역시 영화비평의 영역에서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다만 감독이 실제로 어떤 정치적 의도나 악의를 품었는지는 작품만으로 입증할 수 없는 별개의 문제다. 굳이 감독 개인의 내면을 추정하지 않더라도, 작품이 실제 역사와 허구를 결합한 방식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엄중한 비판이 가능하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는 창작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창작의 자유가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려도 된다는 면허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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